
[이동희 기자]=미국의 외교 노선을 한 마디로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 세습 독재정권은 1936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42년에 걸쳐 대중을 가혹하게 통치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독재정권을 옹호했으며 미국 자본들은 거액을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어느 날 기자들이 미국 대통령 케네디에게 왜 그런 자를 지지하느냐고 물었을 때, 케네디는 “소모사는 개 같은 놈이지만, 우리 미국에는 충실한 개다”라고 답했다.
민주당 소속의 케네디는 루스벨트와 더불어 미국의 진보를 상징하는 대통령이었다. 미국 민주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한다고 천명하지만,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공화당 못잖게 국익과 미국 자본의 이익을 챙긴다. 전후 민주당 정권들은 고 딘 디엠과 이승만 등 신생국의 독재정권들을 노골적으로 지원해 왔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런 무지막지한 외교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흐름이 남아 있다.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파악하면, 전쟁을 나도 이를 막거나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이든 재임 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들조차도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약소국 지도자가 미국의 총애를 잠시 받았다고 해서, 미국이 계속 자기편이 돼 줄 것이라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미국 자본의 이익을 침범하거나 미국의 리더쉽에 흠집을 내면 가차 없이 응징당한다.
서방과 미국의 지지를 받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이 그 실례이다.
12월 3일, 윤석열은 내란을 시도하면서 미국에 귀띔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평소에 바이든의 말을 잘 들어서 제법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너무 과신한 것 같다. 그는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사정을 나중에 설명하면 미국이 그냥 넘어갈 것이라 착각하고 우선 결행을 했다. 그래서 외교장관은 미국대사의 전화도 안 받았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미국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단호하게 윤석열을 차버렸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국가에서 일어난 군사쿠데타는 미국의 Leadership을 흔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투자한 미국 자본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의 군사쿠데타는 바이든의 임기 막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그런데 한국의 내란 사태는 내년 1월 20일 생애 두 번째 대통령에 취임하는 트럼프에게 아주 기분 나쁜 일이기도 하고, 좀 괜찮은 일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취임 초에 한국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 어깨에 손을 얹고 동북아 질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설파해야 멋진 그림이 나오는데, 그것이 물 건너갔다. 한국 정치는 당분간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국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취임식을 하고, 앞으로 사태의 진전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상당히 나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좋아할 측면도 있다. 그는 김정은과의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멋지게 해결함으로써 역사적 업적을 남기려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이 일을 담당할 적임자들을 골라 사실상 요직에 내정해 놓은 상태이다. 여기에 사사건건 방해꾼일 뿐인 윤석열이 반란수괴가 되어 권력에서 제거됐으니,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셈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고 있으면서도,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이는 다음 대선의 여러 경로에서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국민의 힘 내부에서 수구적 노인층과 개방적 젊은 층 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어서, 결국 당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집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민주당은 미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 같다. 최근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쓰기도 했다. 민주당은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보고 있고, 국민의 힘은 너무 모르는 척하고 있는 점이 정말 이채롭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코미디 같은 양상이다.
일단 미국 정부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가 안정적이기를 원하고 있다. 이미 바이든은 한덕수와 통화를 하여, 미국이 과도기를 수습할 인물로 인정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한 셈이다.
한국민들의 민주주의 실천 과정을 지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야당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덕수를 흔들지 마라’라는 강력한 신호이다. 미국은 한덕수를 과도기 행정부 수반으로 하여 정치적 불안정이 하루속히 수습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윤석열 체제의 국무총리로서 민주주의 질서 파괴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독자 세력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며, 상황을 악화시킬 여력이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북 관계를 파탄시키기 위해 미국을 국지전에 개입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하지도 않은 듯 보인다.
이러한 사정을 안다면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자신을 현 정국의 독립변수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현 상황에서 자신이 실세라고 생각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그의 임무는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혼란 없이 내란 의혹을 남김없이 밝히는데 협조하며, 공정한 선거를 거쳐 당선된 새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일이다. 멋지게 상황을 마무리하고 내려와야,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행한 잘못을 어느 정도 용서받을 수 있다.
한국 정치 안정화의 가도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영향력도 그중 하나이다. 가장 큰 변수는 바이든도 말한 ‘한국 국민(Korean People)’의 생각이다. 앞으로 2~3개월 동안, 국민 여론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가 가장 힘 있는 변수이다. 경제 상황과 국민의 삶, 여야 정치인들의 목표와 행동, 남북 관계를 포함한 국제 정세 변동 등이 또 다른 중요한 변수들이다. 그러니 다들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서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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