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자수첩] 젊은 후배 기자의 죽음. 일제의 잔재는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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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젊은 후배 기자의 죽음. 일제의 잔재는 버려야

이대로 보내도 좋은가! 아직도 스마트폰에는 그의 연락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기사입력 2017.02.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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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기자실.png▲ 기자가 출입하는 부산시청 기자브리핑룸. 고 김항주 기자가 몸담았던 언론사 출입기자의 앞자리가 비어있다. 사건 이후 계속 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김기자도 가끔 여기서 급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뉴스앤뉴스=강수환기자] [기자수첩] "젊은 후배 기자의 죽음. 일제의 잔재는 버려야"

29년의 짧은 삶을 기자로 시작해 기자로 마무리한 까마득한 후배 기자를 향한 글쓰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하지만 나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어 이제 한자 한자 적어보고자 한다. 

 

‘기자는 기사를 발로 써야 한다.’

 

이 말은 지금도 기자들에게 숭고한 가르침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워낙 빠른 속도로 복잡 다양해지고 있고, 언론사도 ‘1인 언론사’가 등장할 정도로 많은 미디어 매체가 생겨나면서 언론계의 ‘속보’나 ‘단독보도’의 싸움은 매체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세상이 되었다.

 

한때 5인 미만 상시고용이 없는 미디어 매체가 사라질 위기(박근혜정부, 신문법시행령)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가 상시고용 인력이 5인 미만인 언론사를 사실상 ‘등록취소’한 신문법시행령을 “언론의 자유를 침해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 비록 열악한 환경의 ‘1인 언론사’라 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 규모가 큰 ‘대형언론사’나 ‘1인 언론사’ 모두 우리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판단과는 달리 언론매체들 사이에서는 특히 대형언론사 위주로 소위 ‘갑’질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부산지역이 더 그렇다. 공판기록이나 참고인 소환여부와 시간, 수사내용의 흐름들을 알아야 기사를 쓸 수 있는 법조기자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바로 ‘기자실’이란 단어다.

 

정부부처나 법조, 경찰, 심지어 기업들까지 기자실을 운영하며 ‘출입기자단’에 가입되어 있어야 빠른 정보와 고급정보를 취급하는 기자실을 이용할 수 있다. 가입하지 못한 언론사는 항상 정보의 신속성에서 타 매체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며 이는 곧 ‘폐간’이라는 위험에 노출되고 만다. 그래서 기를 쓰고 ‘출입기자단’에 들어가려 하지만 이들의 진입장벽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큼 높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우리 민족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시작됐던 ‘기자실’ 운영이 해방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독재와 반민주정부를 거치면서 언론을 길들이거나 통제(광고)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왔고, 이는 곧 ‘감시’와‘비판’이 사라진 언론을 만들어 버리는 형태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기자실의 이러한 배타적, 폐쇄적인 운영은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나 기자실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여러 차례 표출됐지만, 그때마다 정보의 일관성과 보안성 그리고 앰바고(보도시점약속)가 깨진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그들만의 기득권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개방’의 압박이 드세 질수록 ‘기자실’에 상주하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대형언론사들 간의 카르텔(기업연합, 기업과 기업 간의 경쟁으로 일어나는 불이익을 제거하고 시장독점을 공유하는 것)은 더욱 견고해졌고, 감히 역대 어느 정부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굳건함으로 뭉쳐 있다.

 

만약 취재원(취재대상)이 다른 기자를 함께 불러 브리핑 할 경우 카르텔에 속한 그들은 다른 기자를 ‘일반인’으로 취급하며 취재원에 항의하는 추태 부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들의 회사나 선배기자가 쌓아 놓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교육(?) 받은 탓이다. 그것이 그들의 선배기자도 후배기자도 해야 하는 전통(?)이라 굳게 믿고 있다.

 

재벌과 정권의 기득권은 목이 아프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기득권은 절대 놓을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일제의 잔재를 따르면서 말이다.

브리핑실.png▲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정부 부처에 설치된 기자실을 개방해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는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들어 다시 기자실을 되살리기로 결정했고, 이후 각 출입처 기자실은 정책 브리핑 대신 ‘보도자료’로 대신하고 있다.
 
 

기자라면 모두가 공통된 정보를 가지고, 얼마나 충실하게 그 정보의 옮고 그름을 밝힐 것인가를 가지고 경쟁하고 또 그것을 국민들께 알려주고, 국민들로부터 그에 대한 평가(구독률, 시청률)를 받는 것이 정당하지 않는가! 출발선에서 시작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나부터 먼저 출발하는 반칙은 우리가 그렇게 없애려고 애썼던 그것(?)이 아닌가!

 

급기야 이를 견디다 못한 스물아홉의 젊고도 젊은 기자 한명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다.

 

조카뻘 같은 나이의 젊은 기자였지만, 기사에서는 늘 사회정의를 외쳤고 자신의 언론사가 ‘부산법조기자단’에 속하지 못해 받는 억울함도 견디며 다른 언론사에 뒤지지 않으려고 발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던, 기자만 천직으로 알고 다른 일은 할 생각도 하지도 못한다며 겸연쩍게 웃던 젊은 기자가 견고한 법조기자계의 카르텔을 ‘부수지’ 못하고 자신이 그만 ‘부셔져’ 버린 이 사건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기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정보를 얻고, 이 정보가 올바른 것인지 국민 모두에게 유익한 것인지 해가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진실을 찾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기사를 쓴다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기자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기사인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더 뛰어다니지 못하고 여기서 멈추고 싶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며 삶의 마지막 기사를 쓴 기자는 그렇게 좋은 세상을 향해 떠났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곳은 굳건한 그들만의 ‘카르텔’도, ‘왕따’도 없는 그런 기자로서 그쪽 세계를 신명나게 맘껏 취재하며 살고 있으리라 믿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 한다.

 

밥 말고 꼭 술을 한잔 하자는 약속을 지켜 줄 기회도 없이 어딘지 모를 먼 길을 보내버린 선배 기자가 기껏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은, 비록 서로 다른 언론사에 몸담고 있었지만 자신의 매체에선 자신의 사망소식이 한 줄도 실리지 못하는 비정함을 이 글로 대신 하는 것이 ‘함께 마신 것’으로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故김항주 기자”는 영원한 기자로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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