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2020 광주인권상 수상자 '벳조 운퉁, Bedjo Untung' 약력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2020 광주인권상 수상자 '벳조 운퉁, Bedjo Untung' 약력

기사입력 2020.03.20 19:0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2020 광주인권상 수상자 약력
       
• 성명 : 벳조 운퉁, Bedjo Untung
• 국적 : 인도네시아  
• 출생연도 : 1948년 3월 14일  
• 출생지 : 페말랑 (자바 중부지역)
• 소속 : YPKP65(인도네시아1965/1966 학살 연구소)
• 전자우편 : ypkp_1965@yahoo.com; beejew01@yahoo.co.uk
• 소속단체 웹사이트: www.ypkp1965.org
• 왓츠앱 : 082210567865
• 페이스북 : @Bedjo Untung
• 사무실/자택 전화번호 : 021 - 53121770
[크기변환]2020image011584667606.jpg▲ 자바 중부 지역의 페말랑에서 1965년 비극의 희생자들을 만나는 모습(사진=518기념재단제공)
 
       
• 활동내용 :
 
1. 1965/1966 대학살 당시 수하르토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정치범이 됨. 벳조 운퉁은 1970년부터 1979년 사이에 재판 없이 구금되었다.
 
• 1970년 10월 24일 자카르타에 있는 칼롱 군사정보국에 붙잡혀 잔인한 심문과정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전기충격과 고문, 최악의 위생상태, 식량부족을 경험했다. 그리고 영양실조에 걸렸다.  
• 1971년 10월 24일 자카르타에 있는 살렘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상태는 그가 칼롱에 있을 때보다 더 나빠졌다. 2천 명의 구금자들이 인파가 넘치는 작은 감방에 함께 모여 있었다. 모래로 가득찬 질 나쁜, 게다가 양도 적은 쌀을 먹어야 했다. 여기서 많은 구금자들이 굶어 죽었다.  
• 1972년 10월 24일 – 1979년 10월, 탕에랑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되었다. 모내기, 벼 깎기, 나무 깎기, 벽돌 만들기, 돌 채취, 땅 가꾸기, 물소농장, 염소농장, 양계장, 어업 등의 강제노동을 했다. 이 노동의 생산물은 모두 군부가 가져갔다. 강제노동을 하던 사람들은 여기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무급으로 일했다.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수용소에 자라고 있는 채소를 찾아야 했다.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쥐, 뱀, 고양이, 도마뱀, 개, 곤충, 벌 등을 먹어야 했다.   
• 1979년 10월 24일, 그는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석방되었다. 국제사면위원회나 국제적십자위원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유럽 공동체 등이 압력을 넣었다.   
• 1979년 10월 24일까지는 정치범들이 감옥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감옥에서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군부는 여전히 그들에게 가는 곳마다 정기적으로 군 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정치범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차별과 낙인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들은 공무원, 교사, 의사, 군무원,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의 신분증에는 특수코드인 “ET”가 기입되어 있는데 이는 치안기관이 그들을 쉽게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이는 옛 정치범임을 의미한다.
       
2. 1999년 4월 7일, 그는 YPKP 65 (인도네시아1965/66 학살 연구소) – (이하 YPKP 65) – 를 건립하였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학살의 희생자를 위해 싸우며 치유와 배상,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3. 2000년 11월 16일, 자바 중앙에 있는 원오소보에서 집단 무덤을 발굴했다. 희생자들의 유골은 21구였다. 이는 1965년-1966년 군부가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활동이었다.
      
4. 2007년부터 YPKP 65의 대표로 재임했다. 함께 단체를 설립한 동료들은 다음과 같다: 프라모에디야 아난타 투르 (작가), 술라미 (여성운동가), 하산 라이드 (정치인), 수하르노 (학생운동가), 코에살라 토에르 (작가), 수미니 (여성운동가) 그러나 이들은 세상을 떠났다.
    
5. 2008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 진실과 정의를 위한 회의에 참여하여 중앙 자바 원오소보에서의 유해 발굴에 대한 증언과 경험을 공유하였다.
   
6. 2009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진실과 정의를 위한 국제회의의 기조연설자로 초대되었으나 불행히도 화산폭발이 일어나 보고타로 가지 못했다. 그때 그는 자카르타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7.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재판의 증인이 되었다. 1965-1968년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그 다음해의 사건에 대해 증언하였다. 마침내 재판소는 1965-1966년 일어난 비극의 대학살과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책임을 지고 앞으로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치유와 배상, 보증을 하며 후속조치를 취할 것과 인권침해에 대한 특별법정을 열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재판소는 또한 인도네시아의 대학살에서 인도네시아 군부를 지원한 미국, 영국, 호주의 책임을 촉구했다.
       
8. 201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1965년의 역사와 화해 국제학술회의의 기조연설자가 되었다.
      
9. 2017년 6월 21일, 서울의 진실의 힘 재단이 수상하는 인권상을 받았다. 그것은 YPKP 65가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위해 더 용감하고 헌신적으로 일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희생자들이 여전히 박해와 차별, 오명 속에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받은 명예로운 상이기 때문이다.
 
10. 1999년부터 YPKP 65 의 유해발굴팀으로서 1965/1965년의 비극의 진실을 찾기 위해 애썼다. 지금까지 수마테라, 자바, 발리에서 346 군데의 집단 무덤을 찾았다. 이 숫자는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므로 더 증가할 수 있다. 이 집단무덤의 발견은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보고되었다. 그러나 후속조치는 없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희생자들을 변호하는 데 전념하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방(수마테라 북부/서부/남부, 람풍, 자바 서부/중부/동부, 반텐, 발리, 칼리만탄)에서 보냈다. 주된 목적은 희생자들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들은 옳은 자리에 있을 뿐이고 아무 잘못이 없다.
       
희생자들을 위한 아주 작은 기회가 있다. 인도네시아 헌법 제13조(2006)와 제31조(2014)에 따라 이들은 정부로부터 의료지원이나 심리치유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벳조 운퉁과 YPKP 65 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원회와 LPSK (증인 및 피해자를 위한 보호기관)을 통해 희생자들이 이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11. 제주 4.3평화재단이 2018년 10월 4일-7일 마련한 ‘진실과 정의 –지속가능한 정의를 위하여’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자로 인도네시아의 대학살과 냉전, 그리고 미국의 역할에 대해 연설.
       
12. 2019년 4월 13일, 미국 뉴헤이븐에서 예일대학교가 주최한 학회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그 영향, 해결전망에 대해 기조발제자로서 연설.
       
13. 2019년 5월 19일, 5.18기념재단이 주최한 광주아시아포럼에서 ‘정의로 향하는 긴 여정,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인권침해 해결’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14. 2019년 5월 22일 대한민국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여기서 벳조 운퉁은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한국전쟁 희생자들이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함께 손을 잡고 연대할 수 있었다.
      
15. 5·18기념재단이 2019년 9월 5일 인권활동가들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1965년 비극의 정치범 수용소를 함께 방문했다.
       
16. 2019년 8월 24일 벳조 운퉁과 YPKP 65 는 자바 중부 지역에 있는 집단 묘지에서 대학살의 기념행사를 조직하였다. 모인 사람들은 1965년-1966년 법적 절차도 없이 살해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꽃을 뿌렸다. 그리고 이 행사는 극우 단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경찰의 경호 아래 이루어졌다.
  
17. 2019년 11월 10일, YPKP 65 조사팀이 3개의 유골이 있는 집단무덤을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는 1965년 활동하던 농민운동조직의 대표라고 사료된다. 그는 적법절차 없이 군에 처형되었다. 이 무덤은 자바 중부 지역의 쿤시 마을에 위치해 있다.
 
 
<저작권자ⓒ(주)뉴스앤뉴스TV & www.newsnnewstv.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