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중국의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섬 , 가거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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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섬 , 가거도 (2)

최서남단 마지막 등대와 기러기 등대원
기사입력 2018.09.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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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섬 , 가거도 (2)
등대.jpg▲ 대한민국 최서남단 끝 마지막 등대인 문화재 제380호 가거도등대(사진=주윤기자)
 
최서남단 마지막 등대와 기러기 등대원
 
외롭고 고달픈 삶 달래는
‘한스런 노랫가락 ’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
 
(중략 )
 
비바람 불면 자고
비바람 자면 일어나
파도 밀치며
바다 밀치며
한스런 노랫가락 부른다 .
 
조태일 , ‘가거도 ’ 중에서
 
작고한 조태일 시인의 작품 ‘가거도 ’는 극도로 소외된 섬 공간을 노래했다 . 너무 멀고 험해서 바다 같지도 않은 곳에 떠 있는 , 그래서 유배를 보낼 생각조차 접어야 했던 외딴 섬 . 오랫동안 그렇게 가거도는 사람들의 생활영역은 물론 상상의 섬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었다 . 그토록 멀고 험한 거리의 섬 , 가거도 사람들은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고달픈 삶과 목숨을 바다에 맡기며 산다는 ‘한스런 노랫가락 ’을 이녁을 향한 위안의 노래로 불렀다 . 이런 삶의 뒤안길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여행자들은 가거도 섬사람들의 투박하고 공격적 사투리에 상처받기 십상이다 .
 
그 섬 끝자락에 가거도등대가 있다 . 2008 년 7 월 14 일 등록문화재 제 380 호로 지정되었다 . 우리나라 남서쪽 끝자락의 마지막 등대로써 1907 년 12 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흑산도 등대에 소속돼 무인등대로 첫 불을 밝혔다 . 1935 년 9 월 유인등대로 전환해 증축했다 . 1955 년 12 월 목포지방해무청 소속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 년을 훌쩍 넘긴 역사적인 등대이다 .
 
가거도등대는 흰색의 원형 벽돌구조로써 등탑 하부에서 등명기 설치대까지 일직선의 사다리 형태로 지어졌고 불빛을 쏘는 등롱 외부에도 역시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 . 등롱은 원뿔 모양이며 이전에 세워진 등대에 비하여 출입구인 돌출현관이 간단하고 등탑 내부 계단이 직선형으로 변하는 등 등대의 효율성을 중시했다 . 박병훈 가거도등대 소장은 “해무 때문에 2~3 일에 한 번씩은 등롱을 닦아줘야 빛이 멀리 나가기 때문에 등탑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린다 .”면서 “등탑 옆 건물엔 무 (霧 )신호기가 있는데 빛이 안개를 뚫지 못할 때 항해하는 배들은 소리로 방향을 잡는다 . 55 초 쉬었다가 5 초 소리를 내는 것으로 이곳이 가거도 항로표지관리소임을 알린다 .”고 설명했다 .
 
가거도등대 등탑의 높이는 7.6m 이며 등고는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84m 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다 . 등대 불빛은 15 초마다 한 번씩 반짝이는데 그 빛이 닿는 거리는 38km 이다 . 2002 년에는 최첨단 항법시스템인 위성항법정보시스템 (DGPS)을 설치했다 . 이로 인해 반경 185km 이내에서 위성항법시스템 (GPS)의 위치 오차를 1m 이내로 줄여주는 위치정보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
 
동남아 쪽 해상에서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을 모두 이 가거도등대를 보고 가거도 주변 뱃길을 해독하고 항해를 판단한다 . 등대의 역할을 매우 지대한 셈이다 . 이 등대는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 등대건축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등대 문화유적이기도 하다 . 위쪽의 꼭대기 부분을 일부 보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당시 건축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등대_불빛.jpg▲ 노을이 지자 등대 불빛이 어둠을 밝힌다(사진=주윤기자)
노을이 지자 등대의 여정이 시작됐다

육지에서 먼 해상에 떠 있는 가거도 . 그 섬의 등대원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 한 등대원은 “업무가 크게 고된 것은 아니지만 외롭고 쓸쓸한 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 ”고 말했다 . “육지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이곳 섬에 잘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기도 해요 ...”라고 말끝을 흐렸다 . 그리고 노을이 지는 시간 . 가거도등대는 일몰 포인트이기도 하다 . 해질 무렵 먼 바다를 바라보면 고독이라는 병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택이 있지만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결국 등대처럼 홀로 남는 게 등대원의 운명이다 .
 
“요즘 말로 기러기아빠가 되는 거죠 ?” 그 등대원의 한마디처럼 결국 등대와 한 몸이 되고 자기와 싸우며 사는 일이 등대원의 운명이고 등대원의 길일 수밖에 없었다 . 수평선을 뜨겁게 지피던 햇무리에 흠뻑 젖어있는 사이 ,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 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진정한 여정이 시작됐다 .
 
등대에는 3 명이 근무하고 등대원은 24 시간을 쪼개 8 시간씩 근무한다 . 매일 아침 9 시 조회에서 그날 일을 점검한다 . 일이 있을 땐 다 같이 모여 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사무실에 있건 관사에 있건 등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 등대는 쉬지 않고 돌아감으로 깊은 밤 , 잠을 자더라도 대기상태이다 . 결국 8 시간 근무가 아니라 실상은 24 시간 근무체제다 .
 
그래도 옛날보다는 근무환경이 매우 좋아졌단다 . 80 년대 중반 관사에 기름보일러를 놓기 전에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 비축해놓는 일도 중요한 업무였다 . 해안가 유류창고에서 지게로 기름을 들쳐 메고 와야 했다 .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돼 있다 . 그래서 지금은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는 일이 주 업무이다 . 등대의 여러 시설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관리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것 , 기상청의 위탁업무인 기상과 해양 관측하는 일이 주요 업무이다 .
 
가거도 등대는 매년 3,000 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찾는다 . 등대원들은 접근성 때문에 다른 등대에 비해 방문자가 적지만 이곳 등대를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손수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등대의 역할과 원리 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곤 한다 .
 
등산과 낚시 애호가들이 이 섬을 주로 찾기 때문에 등대를 찾는 이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 그래서 등대가 관광자원으로 적극 개발되고 혁신적 관광전략이 요구된다 . 등대 앞에 창고에 있던 증압기 등 옛날에 쓰던 기계들은 등대 전시실로 진화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등대와 사옥 주위를 둘러싼 석층이 요즘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이 퀄리티 석층인 것도 가거도 등대의 자랑거리다 .
 
무인도_소구굴도와_무인등대710.jpg▲ 가거도 끝 무인도 소구굴도와 무인등대(사진=박상건시인.섬문화연구소장)
 
● 교통편
목포 제 1 여객선터미널에서 두 선박회사가 홀수 , 짝수 일에 1 일 1 회씩 운항한다 . 4 시간 30 분 소요된다 . 배편 문의는 남해고속 (061-244-9915) 동양고속 (061-243-2111). 섬 안에서 자동차가 운행된다 . 실비로 육상관광을 별도로 진행할 수 있다 .
 
● 숙식과 즐길 거리
낚시는 가거도 어디서나 가능하다 . 다만 , 전문가들은 주로 2 구와 3 구에서 민박하며 선상낚시와 갯바위 낚시를 한다 .섬 체험프로그램의 경우 삿갓조개 , 거북손 따기 , 돌미역 채취 , 해산물채취 , 산나물 채취 등을 할 수 있는데 이장에게 문의하면 된다 . 대부분 숙박과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 . 가거 1 구 중앙장 (061-246-5467) 남해장 (061-246-5446) 동구민박 (061-246-3292) 가거 2 구 은성낚시민박 (061-246-5513) 태공장 (061-246-3418) 가거 3 구 김영순 (061-246-1663)
 
<주윤기자 news-97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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