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0일 오전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심사한 후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가 대부분 수집된 점, 피의자의 직업 및 주거 등에 비추어 도망의 염려가 크지 않은 점, 주요 혐의인 국가정보원법 위반죄는 원래 국가정보원 직원의 위법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고, 그 신분이 없는 피의자가 이에 가담했는지를 다투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국가정보원법 위반, 업무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재철 전 사장은 당시 국정원의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대로 ‘PD수첩’ 등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제작진, 진행자, 출연진을 교체하고 방송 제작을 중단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 문건에는 김재철 전 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고강도 인적 쇄신,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 MBC의 근본적 체질을 개선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재철 전 사장 취임 이후 MBC에서는 일부 간판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기자·PD들이 해고됐다. 참여 직원들 중에는 기존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좌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MBC 방송노동자들은 이같은 방송농단의 주역으로 김재철 전 사장을 지목하고 있다. 여기에 김재철 전 사장은 MBC 직원 겸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한 교육 명령을 통해 노조운영에 개입한 혐의도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은 9일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 약 3시간여에 걸쳐서 김재철 전 사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에 대해 법원의 직접 심문을 받았는데 김재철 전 사장이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법원의 심문 시간이 비교적 길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실질심사가 끝난 후엔 서울구치소에서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재철 전 사장은 지난 6일 오전 검찰에 소환됐다. 김재철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김재철 전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1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자리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 “제 목숨을 걸고 단연코 MBC는 장악될 수 없고, 장악할 수도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과연 김재철 전 사장은 양심적으로 진심을 밝힌 것인가?
김재철 전 사장은 또한 구성원 대량 징계와 해고 보도 통제, 파업 중 대체 인력 채용 등에 국정원의 지시나 교감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국정원 사람을 왜 만나겠나”라면서 “본부장, 임원, 국장하고 의논하는 것이지, ‘기사 빼라, 바꿔라’, ‘프로그램 없애라’고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언론노조는 “그것은 김재철 전 사장의 김재철식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재철 전 사장은 그러면서 “국정원 문건은 받은 적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면서 “김우룡 전 이사장이 문건을 받았다고 하니 검찰에서 철저히 조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재철 전 사장은 지난 2011년 국정원 관계자, MBC 일부 임원과 결탁해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PD 수첩’ 등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MBC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제작진과 진행자 교체, 방영 보류, 제작 중단 등의 불법 관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해 “이른바 ‘MBC 정상화’에 대한 국정원 요청이 김재철 전 사장 등에 의해 그대로 실행됐다”면서, 김재철 전 사장이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진을 교체하는 등 방송 제작을 불법적으로 막았다고 판단했다.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관련해 두달 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MBC 노동조합원들도 9일 오전부터 법원에 나와 김재철 전 사장의 출석을 지켜보면서 ‘김재철 구속’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김재철 전 사장의 구속을 촉구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지난달 30일 김재철 전 사장, 백종문 부사장, 전영배 전 보도본부장(현 MBC C&I 사장) 등 당시 MBC 임원진 3명의 주거지, 현재 사무실과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압수수색 당일 본인의 휴대전화 포렌식에 참여했을 때도 김재철 전 사장은 “부당 인사를 한 적은 없다”면서 “국정원 직원 관계자가 서류를 줬다고 하는데, 만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후 검찰은 그달 31일 김재철 전 사장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백종문 부사장과 이우용 전 MBC 라디오본부장을 조사했고, 국정원 직원과 공모해 MBC 방송 제작에 불법으로 관여하는 등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조사했다.
국회에서도 김재철 등 과거 MBC 경영진들의 방송농단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민일홍 KBS 라디오 PD, 김범수 KBS PD, 이근행 MBC PD, 이우환 MBC PD 등 언론노동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각종 피해를 당한 이유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 국정원 개혁위가 공개한 ‘국정원 언론파괴 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치’를 당하도록 짜여있었다. 김재철 전 사장이 결코 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유승희 신경민 김경진 추혜선 국회의원과 미디어기독연대, 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공동대책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장에서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를 했다. 김장겸 김재철 두 전현직 사장이 그간 저지른 방송 패악 행태에 대해 심도 있는 증언과 토론이 이어졌다.
재판부의 김재철 전 사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동시에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방송노동자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 관계자는 “누가 봐도 언론 장악과 노조파괴 공장 언론 조작 등 패악이 심각한 수준인데도 김재철 전 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법원의 김재철 전 사장의 이날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